[이런 인물 들어봤니] 호머 헐버트 선교사(Homer Bezaleel Hulbert)
페이지 정보
본문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 I would rather be buried in Korea than in Westminster Abbey."
개항 이후 조선에 찾아왔던 서양 사람들조차 이국적인(?) 조선을 전달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하다. 각종 견문기에서 조선에 관한 그릇된 인상, 잘못된 정보를 심어주기가 일쑤였다. 조선에서 다년간 체류하며 조선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한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는 서양인의 조선 견문기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느꼈다. 서양인이 조선에 관해 지은 책도 드물지만, 그마저도 조선에 관한 올바른 사실을 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헐버트가 1895년 영문 잡지 ‘The Korean Repository’(한국휘보)에 기고한 영국인 새비지랜도어의 『코레아 또는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서평에는 그의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조선은 한여름에도 눈보라가 내린다. 조선인은 아프리카 흑인만큼 피부색이 검다. 조선의 도성에는 밤마다 맹수가 침입한다. 조선인은 세탁하면서 옷을 몽둥이로 팬다. 그는 이런 식으로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글을 쓰는 습관을 질타했다. 무더운 한여름 한낮에 시에스타 같은 낮잠을 자는 광경을 보고 한국인의 게으름을 논하는 서양인의 섣부른 인상 비평도 교정 대상이었다.
헐버트가 1901년 발간한 영문 잡지 ‘The Korea Review’(한국평론)는 ‘리뷰’라는 제목에 걸맞게 당시 한국에 관한 지식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평론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월간지였다. 한국에 관한 견문 지식뿐만 아니라 역사 지식의 평론에도 힘썼던 근대 한국학의 주요 발신지였다. 이를테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이 조선에서 농사를 지은 덕분에 조선에서 비로소 벼농사가 도입됐다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 벼농사는 이미 서력기원이 시작할 때부터 시작됐고, 일본은 조선에서 벼농사를 배웠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The Asiatic Quarterly Review’(계간 아시아평론)에 실린 스에마쓰 겐초(末松謙澄)의 한·일관계론도 비판했다. 조선이 수 세기 동안 일본에 공물을 바치며 일본의 주권을 인정한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주장을 논파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제국을 칭하고 중국과 맞먹으며 조선에 우월감을 보였으나 운요호 사건(1875)에 따른 강화도 조약에서 일본이 제국을 칭했다고 해서 그것이 조선에 대한 종속 관계를 부과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자인했다고 지적했다. 운요호 사건과 비슷한 시모노세키 사건(1861) 때 피격된 미국 측에서 일본 측의 배상금을 받았다가 후일 배상금을 돌려주며 일본 측의 자위권을 인정했는데, 일본 측은 조선 측에 그러한 조처도 없었음을 부기했다.
헐버트의 ‘한국평론’은 당시 영문으로 유통된 한국의 견문 지식과 역사 지식을 적극 리뷰하고 힘껏 교정한 매체였다. 그러나 한국 상황의 획기적인 변화와 이에 따른 인식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련해 이 잡지 1906년 4월호 기사 ‘A Visit to Seoul in 1975’(1975년 서울 방문기), 곧 1906년 시점에서 약 70년 후의 한국을 상상한 미래 소설은 의미심장하다. 신속한 경부선 급행열차(부산-대구-대전-수원-영등포-남대문 구간). 미국 뉴욕의 호화로운 월도르프 호텔을 닮은 서울의 그랜드 호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시팔을 공연하는 종로의 드로리엥 오페라 극장. 100만 권 이상의 책을 갖춘 제국도서관과 국립도서관. 가장 모범적인 대학 교육으로 저명한 극동 최대의 세 대학인 제국대학·서울대학·대동대학. 주정뱅이가 없고 범죄 소식이 없는 경건한 종교문화.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며 이방인을 환대하는 다정한 사람들. 이제 “물질적인 발달은 물론 정신적인 발달에서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수천만보다 더 계몽된 나라가 없으며 더 진보적인 민족이 없다”고 했다. 에필로그의 말이다.
올해는 2020년. 과거에 상상한 미래의 그 해로부터 다시 45년이 지났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전염병 대유행에 따른 지구의 위기 상황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슬기로운 국내 대처가 주목받고 있고 모범적인 국제 협력이 기대되고 있다. 새로운 한국과 새로운 한국인의 자각은 이에 합당한 글로벌 지식을 지향한다. 식민지와 냉전의 논리로 편제된 낡은 한국 지식을 혁신하는 새로운 헐버트를 꿈꾼다.
호머 헐버트(H. Hulbert·1863~1949)는 흔히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불린다. 한글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 띄어쓰기와 가운뎃점(·) 찍기를 도입했다. 1891년 순한글 세계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사진)도 만들었다.‘The Korea Review’(한국평론)는 한국학 연구자로 저명한 그가 편집한 잡지인 만큼 여기에는 한국에 관한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수수께끼다. 언젠가 한번은 헐버트가 한국인 두 명에게 한국 수수께끼를 수집해 오라고 시켰다. 서양 같으면 책이나 신문을 참조해야 할 텐데, 이들이 그런 것을 참조하지 않고도 단 이틀 만에 뚝딱 모은 수수께끼가 중복된 것을 빼고 무려 175개나 된다고 감탄했다.여기서 잠깐 몇 개 소개해 본다. ‘늙어가면 살찌는 것 무엇이오’ ‘입은 하나라도 목구멍은 셋 있는 것 무엇이오’ ‘삼시 목욕하는 것 무엇이오’ ‘짐 실으면 가고 안 실으면 안 가는 것 무엇이오’. 그렇다면 정답은? 만약 이 수수께끼를 모두 맞힐 수 있다면 1900년대 한국의 전통적인 농촌 생활에 상당히 친숙한 감각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 같다. 정답은 차례대로 담벽, 아궁이, 사발, 신발이다.
글 : 노관범 교수(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글 출처 : 중앙일보
원본 링크 : https://news.joins.com/article/23739473
사진 출처 : 뉴시스
- 이전글[이런 인물 들어봤니] 브루스 헌트 선교사(Bruce F. Hunt) 20.04.20
- 다음글[이런 인물 들어봤니] 애니 앨러스 선교사 (Annie J. Ellers) 20.04.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